야곱의 고뇌, 창세기 32:21-32, 485장
여호수아 1-7장
오늘 우리는 야곱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야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사기꾼, 꾀돌이, 교활함 뭐 이런 단어들입니다. 그는 전혀 복받지 못할 성품을 지녔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 했기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아주 이기적이지만 야곱의 강점은 그래도 하나님께 매어 달린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기도할 수 있는 권리는 있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의 단점은 착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죄송해서 기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매어 달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야곱은 세속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욕망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더 나아가
불의한 일까지 서슴지 않고 해치웠습니다.
그래서 형과 아버지를 속였고, 하나님 앞에서 거짓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14년을 머슴살이를 한 사람입니다. 가히 위대한 집념의 사나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잠언 17장 1절에서 말씀하지 않습니까?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음식이 산해진미이면 무슨 소용입니까?
식탁에 마주 앉기만 하면 서로 싸우는데 좋은 집이면 뭐합니까?
화목이 제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집, 좋은 음식, 비싼 물건 다 소용없습니다. 소용되는 것은 화목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것을 깨닫는 데에 20년이 걸렸습니다.
사람 철나기가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파란만장한 20년의 세월을 살고 나서야 비로소
화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야곱은 더 나아가 화목이 없는 것이 바로 나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자신이 동생이라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 아니라, 형이 성격이 포악해서가 아니라, 문제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화해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큽니다.
형이 나를 어떻게 대할까? 20년 동안이나 이를 갈고 지냈을텐데 어떻게
나올까? 듣자하니 400명을 인솔하고 온다고 하는데, 나와 화해하려면 혼자 올텐데 왜 400명을 인솔하고 올까?
그 동안 모았던 내 재산은 어떻게 되고 내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앞서갑니다.
이런 두려움으로 해서 화해가 어렵고 회개가 어려운 것입니다.
요사이도 가만히 보면 ‘네가 받아들인다면 사과하겠다’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이든 살리든 물어볼 것 없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나의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역시 고민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대하실까? 형님이 나를 어떻게 대할까?
그러나 탕자는 그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대하시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하고 완전히 항복하여 두 손 들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자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돌아오는 자는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온전히 자기를 부정하고 나아와야 합니다. 거기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가리까?
여러분, 답답하고 괴롭습니까? 기도하고 몸부림쳐도 열리지를 않습니까?
모름지기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될 때에만 비로소 사죄의 은총을 입게 되고 화목하게 되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 문제 자체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오늘 야곱도 먼저 그 문제 자체와 씨름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바로 형 에서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을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빨리 진행시키려고 편법을 쓰거나 불법도 거침없이 행합니다. 어떤 분들은 남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면 그 사람하고 맞붙어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듭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런 방법을 쓰면 일이 더 꼬이고 문제가 어려워지기만 할 뿐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려운 문제, 꼬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 문제 자체와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과 씨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야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다운 간사한 수단을 씁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한 것입니다.
그는 형의 속셈을 떠보고자 먼저 사자를 보냅니다.
그리고는 이쪽을 치면 저쪽으로 도망가겠다는 심산으로 무리를 두 대로 나눕니다. 그리고 선물 공세를 폅니다. 거듭 예물을 보냅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여전히 불안합니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절된 사람입니다.
악인은 고독합니다. 악인은 어디에를 가나 견딜 수가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닙니다. 혼자서 스스로 두려운 것입니다.
홀로 있어도 그 마음은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잊어버리려고 술도 취해 보고, 방탕하고, 마약도 해보지만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악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누구라도 그를 위로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No substitute, 대책이 없습니다.
자 이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니 재산도 다 소용없습니다.
그 많은 아들 딸도, 사랑하는 아내 라헬도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야곱은 모든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밤이 깊어지자 불안과 근심 걱정도 깊어져만 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이 상황을 본문 2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홀로 남은 이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있어야 했고 하나님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했습니다.
잠언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원수와 화목하게 되는 것은 선물 가지고 될 일이 아닙니다. 마주 앉아서 흥정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홀로 남은 시간, 고독을 느끼는 그 시간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간섭하시는 시간입니다.
현대인들의 문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내 곁에서 떠나가게 합니다.
홀로 있게 합니다. 그때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485장 4절.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오늘 성경은 야곱이 벌거벗은 이 자리를 얍복 나루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얍복이란 말은 ‘비운다’라는 뜻입니다.
얍복 나루터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기인생을 철저히 비우는 장소입니다.
벗어야 만날 수 있고,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얍복 나루터입니다. 이곳까지 와서도 자신을 비우지 못하면, 가면을 벗어 던지지 못하면, 헛된 욕망을 쏟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그 순간 우리는 정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밤에 그 밤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 할 때, 춥고 외로울 때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어려움을 가지고 부르짖을 때 외면치 않으시고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 분이 오늘도 내 인생 속에 찾아와 주셔서 간섭하여 주시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 개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 목이 뻣뻣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
나는 내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자신을 믿고 살아온 사람,
바로 그가 야곱이요,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두 손들고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 그가 바로 이스라엘이요 승리자인 것입니다.
누가 승리자입니까?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누가 이스라엘입니까? 하나님께 무릎 꿇고 매달릴 수 있는 사람, 두손 들고 항복하는 자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크리스챤의 승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고 사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 이것이 승리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천사가 씨름하다가 야곱의 환도뼈를 내리쳤다고 합니다.
이제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불편한 다리를 통해서 매일같이 이렇게 찬양할 것입니다.
“나를 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못난 자아를 깨뜨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절며 절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과 상황들이 가로 막고 있을 것입니다.
이유대지 마시고, 변명하지 마시고 이 시간 무조건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안온함과 평강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