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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로마서 6:5-11)

  

 

    그리스도인, 로마서 6:5-11, 436장

 

출애굽기 19-25장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합니다. 

이는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입니다. 

40이란 수는 40일간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금식,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 생활,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심, 예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경에 여러 번 고난의 상징적 기간으로 등장합니다.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날은 재의 수요일로 불리웁니다. 

종려나무를 태운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풍습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에 행해지던 풍습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재는 지난해 종려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를 태워 만든 것으로 인간의 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사순절에는 성찬식을 준비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금식을 행하며,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습니다. 

이번 부활절 감사헌금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고 김영생 선교사님의 사역을 계속하시는 설사모님의 사역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우리는 이렇게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 버리고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나 자신을 아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나를 알려고 노력해도 나를 내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나 자신을 혼자서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도 빛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 비추어 볼 때에만 나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캘빈은 이렇게 단정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지식도 없다.” 그렇습니다. 깊이 생각을 해 봅시다. 

하나님을 모르면 나를 모릅니다. 하나님을 알고야 나를 압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의 잘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인생무상’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보니 ‘인생무상’이고 하나님을 모르면 목적도 목표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무상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먼저 6절을 보면 ‘옛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죄와 사망과 정욕의 노예였던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 만나면 과거 이야기를 주로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왕년에 내가 어땠다, 지금 내가 이렇게 초라하지마는 과거에는 이러했다.

과거에 의해서 오늘을 생각하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잘됐던, 못됐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옛사람으로부터 깨끗이 떠나야 합니다.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그의 인생론이요, 행복론을 요약한 ‘세 개의 물음’이라고 하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아닙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내가 처한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이 현재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옛날에 알던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만날 사람도 아니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같이 내가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어디서 무슨 ‘귀인’이라도 나타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현재에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여기에 인간의 행복이 있다고 합니다.  

전도서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네 떡’이라는 것은 원어상 ‘네가 먹을 것’을 의미합니다. 

네가 지금 당장 먹으려고 했던 그것을 물위에 던지라. 그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남아서 주는 것은 구제가 아닙니다. 내가 먹을 것,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을 내놓아야 구제요, 사랑이요, 선행이라는 말씀입니다. 

‘물 위에 던지라’고 합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을 의미합니다. 

아무 뜻도 없이 방황하는 이 물거품 같은 세상에, 이 사람들에게 던지라 함입니다. 예수님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탈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구제할 때 그가 누군지를 안다면 그것은 무효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선행입니다. 

 

또한 언제 주어야 되느냐? 

준다고는 하는데 ‘1년 후에, 돈벌어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4:13, 17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17절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오늘 선을 행해야 하는데 1년 후에 돈 벌어서 행하겠다고 하면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행은 내일의 문제가 아니요 바로 오늘의 문제라는 겁니다. 전도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 말씀을 믿거든 망설이지 말고, 정말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후히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아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사람은 한평생 세 단계의 생을 살아갑니다. 

첫째가 무지의 단계입니다. 그 생을 모르고 출발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대로 던져진 생을 출발했고 던져진 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이런 환경 저런 환경에서 태어나겠다고 내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사람은 선택적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인생을 아무 것도 모르고 출발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첫 단계입니다. 

 

그 다음에는 알면서도 부득이 따라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 시기는 대개 유년기에서 청소년기에 해당합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선택해 주시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려주는 대로 먹어, 입혀주는 대로 입고, 가라는 대로 가야 합니다. 

내게는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홀로 서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독립적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소위 ‘마마보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내가 선택을 못하고 부모가 선택하고, 부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누가 중매를 했든지, 누가 소개를 했든지, 누가 나를 꾀었든지, 누가 나를 밀어붙였든지 알 바 아닙니다.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지는 것이고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시원치 않은 사람은 옛날에 중매했던 사람을 원망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도 자아를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말씀은 이 문제를 좀 더 확실하게 사실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라고 말씀합니다. 

죽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죽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해체해 버려야 합니다. Picaso, 해체 후에 창조.

내 과거, 내 신분, 내 업적, 깨끗하게 포기하여야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로서는 불가능한데 십자가를 통해서는 가능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 할 때 우리는 예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만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조금 더 깊은 신앙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를 쳐다볼 때마다 우리는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double image가 그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먼저 나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 십자가를 쳐다볼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흘림을 지불해서 구원받은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그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주께서는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여기서부터 나의 참된 정체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마다 ‘내가 너를 무지하게 사랑한다’는 그 음성을 듣고 그 사랑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의식입니다. 

이 문제를 성경에서는 주어졌다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난 거, 내가 부모 선택했습니까? 한국 땅에 태어나고 싶어서 이 땅에서 나왔습니까? 

또한 이 신분도 이 지식도 이 재능도 내가 사는 이 영역, 이 한계라는 것이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농부들이 땀 흘려 일하기는 하지만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 비를 내려주시고  해를 허락하신 하나님,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결국 지식, 경험, 재산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와 함께 하시고 내게 직분을 맡기셔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내버리셨나 싶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내가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벌써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계셨습니다. 

나는 완전히 사막에 버려진 존재인 줄 알았는데 

거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의롭다 하십니다.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의롭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 순수하게 우리 말로 표현하면 의롭다고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보아주십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쉽습니다.

아이가 실수를 해도 이쁩니다. 걸어가다가 넘어지는 것도 예쁩니다.

노래 부르다가 좀 틀리면 그것이 더 좋아서 큰소리칩니다. 

왜요? 사랑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니까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예쁜 것입니다. 

자는 것도 예쁘고 깨는 것도 예쁘고 먹는 것도 예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의롭다 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 앞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있습니까? 나이 40이면 인생철학을 바로 세우고 외길로 주저없이 직선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직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저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저런 일을 해야 하나, 이렇게 방황하고 있다면 이미 잘못된 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무엇에 쓰시려고 오늘까지 살려두시고 훈련시킨 것 같습니까? 

그 파란만장했던 과거가 여러분에게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쓰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나는 때때로 실수하고 괴로워하고 실패한 줄 알았지마는 그 분께서는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새로운 역사를 써 가시고 계셨습니다. 

엄청난 역사를 이루는 것을 순간순간 깨달아가면서 

하나님께서 허물 많은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귀하게 보아주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나 자신 구원받은 그리스인이라는 정체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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