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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의 신앙( 여호수아 1:1-9 )

 

 

    개척자의 신앙, 여호수아 1:1-9, 347장.

 

민수기 1-7장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한평생을 개척자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동안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 좀 알고 싶어합니다. 

그 궁금증 때문에 점쟁이들이 굶지 않고 밥을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평생 미지의 세계로 우리는 오늘도 떠나가야 합니다. 

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존 브레들리 쇼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If you want to go, you have to be able to say good-bye”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안녕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습니다.

good-bye를 깨끗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미련을 두지 마세요.

최희준의 하숙생 가사에도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정, 이 말은 외국 사람들이 번역을 못합니다. 알 리가 없지요.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니까요. 그 끈끈한 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도대체가 우리는 냉정함이 부족합니다. 

 

사무엘하 12장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 성경에서는 우리아의 아내, 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를 하나님이 치시매 심히 앓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고 밤새도록 기도했지만 일주일만에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신복들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하여 니가 말해 니가 말해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 수군거림을 듣고는 그 아이가 죽었느냐고 묻습니다. 

죽었다고 대답하자 깨끗이 몸을 씻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물어 봅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다윗이 대답하기를 15절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하여 나가려 한다면 과거와의 관계가 깨끗해야 합니다. 딱 끊는 냉정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뻔히 안 될 것을 알면서, 끝난 것을 알면서 또 들쳐보고 또 생각하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고 난 후에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의 시종이요 보좌관인 여호수아를 들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십니다. 

아마 이 때의 여호수아는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에게 임한 두려움을 가히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새 직장에 출근할 때 두렵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두렵습니다. 

결혼하여 새 가정을 시작할 때도 두려움까지야 아니더라도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 준비들 없이 결혼들을 합니다. 

용감한 사람이라고 해도 새로운 것을 처음 도전할 때 누구나 다 두렵습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혹 실패하여 비웃음거리가 되면 어떻게 하지?’ ‘괜히 시작하여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많으면 어떻게 하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 불안한 생각이 몰려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많이 반복한 명령은 ‘두려워말라.’입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우리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세 번이나 거듭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6절, 7절, 9절. 

 

여호수아의 불안감 중의 하나는 모세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의 공백을 자기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과연 자신도 모세처럼 그런 지도자 노릇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5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세의 그 탁월한 지도력도 처음부터 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서 얻어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허물과 약점이 참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전에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여호수아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5절 후반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가 훌륭한 지도자로 설 수 있는 비결이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그렇게 잘난 인물은 아니라고 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이 ‘하나님은 항상 나를 지켜주시며,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기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요단강을 건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상식적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정복합니다. 어떻게 정복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다른 조건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저는 여러분이 매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 거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비결이 결코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아서... 

우리의 담대함과 강함의 비결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나는 약하고 두려움이 많지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기에... 

나는 어디에 있어도 두렵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도 않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신 두 마디 말씀을 믿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하나는 ‘내가 저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하심이요, 

또 하나는 ‘너희 손에 붙였다’ 하심입니다. 

아직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미 끝난 것이다, 이제는 밀어 붙여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저들은 나가 싸워 이겼습니다. 주변의 정황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원수가 많든, 무기가 많든 정세가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그런 이야기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을 뿐입니다. 

이 언약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미래적 사건을 현재로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3절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얼핏 생각하면 쉬운 것 같지만 실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발바닥으로 밞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다 하였으니까 이제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만사형통일 것이라 생각하겠지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은 법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도 그렇고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널 때도 그렇고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 법칙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를 만나게 됩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혀 있습니다. 

이 절박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로 홍해를 쳐서 건너가라 하셨습니다. 출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여호수아 3:15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우리는 종종 세계가 내게로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내가 세계로 가야 합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내가 세상에 뛰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2:13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게으른 자는 말이 많고 핑계가 많습니다. 

그래 근심도 많고 번민도 많습니다. 사자가 밖에 있다, 그래서 내가 못나간다, 이런다는 것입니다.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못나간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일 염려는 내일 일입니다. 오늘은 내가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읽으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르시고, 다음은 능력을 주시고, 마지막으로 보내십니다. 

부르시고, 주시고, 보내시고. 그런데 권능을 주신 것은 이제 사람들이 주셨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서 귀신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병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런고로 성경은 ‘이제 순종하라, 그리고 행동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공부 잘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스스로는 공부 안합니다. 

다이어트하겠다고 기도 제목 내어 놓은 사람은 폭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운전을 배우는 사람이 운전 잘하기를 바라면서 차에 올라타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운전을 배우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도 어떻게 못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거저 주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발바닥으로 밟는 그곳을 내가 네게 주었다, 네 손으로 하는 일을 형통하게 하리라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발바닥으로 밟지 않고 나를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무엇인가 되어지기를 바라고 세계가 내게로 오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도둑놈 심보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네가 가서 발바닥으로 밟는 그 곳을 내가 네게 이미 주었다, 그런고로 너는 가서 발바닥으로 밟아서 저 땅을 소유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공허해지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날 때에 용기를 잃게 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성경은 읽어야 합니다. 

아무리 급한 때일지라도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어서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해서 그것이 내 마음에 가득할 때에야 비로소 용기의 사람, 지혜의 사람, 능력의 사람, 형통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9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내가 함께 하리라’입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것처럼, 너와 같이 할터이니 이제 뛰라는 것입니다. 

이제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가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세상이 달라지기를 기도하지 마십시오.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미래를 점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정세와 환경, 미래의 환경 아무도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맙시다. 문제는 믿음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순종하여 용기의 사람, 지혜의 사람, 형통의 사람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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