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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4-30)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4-30, 369장. 

 

여호수아 8-14장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 문제, 문제, 문제의 연속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또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메꿉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십니다. 

어린 아이에게 대학생 수준의 문제는 내 주지 않으십니다. 고등학생에게 

고등학생 정도의 문제를 내 주시는 것입니다. 감당할 만한 시험입니다. 

그 다음에는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나셨습니까?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러한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4:12, 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시험이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나 시험이 다가옵니다. 시험은 불청객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슬프게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 기뻐할 수 있는 요령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의 고난이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더 그 분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고 평안할 때 그랬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문제를 만났을 때 특히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간절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문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너무 고통이 심하여 신음소리 조차 낼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1:1로,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문제를 만나고 나니.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문제를 만나게 되니 정직한 기도를 배우게 된 겁니다. 

 

시험이나 고난, 문제는 인격을 쌓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들은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피할 수 없거든 그것을 즐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문제는 오게 되어 있고, 문제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분명한 것은 시험에는 범위가 있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보장일 것입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은퇴할 때까지 완전히 보장을 받는다면 직장 생활이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어떤 학생에게 대학교 4년 동안 학비를 완전히 보장해 준다고 하면 그 학생은 정말 즐겁게 학창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과 생명보험을 드는 것은 바로 그것이 건강에 대해서 보장을 해주거나 또 자기가 죽어도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보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한 사람의 장래는 바로 어떠한 보장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식어져 가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과연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신앙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분이 혹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특별히 그러한 신앙의 회의에 빠져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큰 깨달음이, 오늘 말씀을 대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나타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시고 이 예배로 초대하여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 놓으셨고, 

오늘 이 시간도 이 예배의 자리로 우리들을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오늘 우리들을 부르셨는가?  

그것은 첫째로,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25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셨는데, 실제 

우리의 삶에는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실제 이러한 신앙생활의 딜렘마 때문에, 심각한 영적 고민에 빠져있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에 신앙과 생활이 따로 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결코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6:26을 

보니까,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미할 때 착고가 풀어진 것과 같이, 하나님을 찬미하면 여러분들의 답답한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그 앞에 닥쳐진 문제가 너무나도 커서, 그 문제로 기도할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내가 기도할 수 있는 힘조차 없이 쓰러져 있을 때 나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6절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오늘 본문 25절에,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 소망을 가진 우리들이 해야 될 일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때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란 시가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기 위해서는 소쩍새도 울고, 먹구름속의 천둥도 쳤습니다. 그 가운데 인내해야만 국화꽃은 아름다운 꽃을 만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소쩍새가 우는 즐거움도 있지만 천둥이 치고 서리가 내리는 괴로운 시기도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0절 말씀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들이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고, 

때에 따라 역사해 주셔서, 결국에는 우리들을 흠이 없고 완전한,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비록 가난하고, 병들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여전히 사랑해 주시고, 끊임없는 관심 가운데 나를 이끌어 주셔서, 결국 나를 영화롭게 높여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비록 힘든 처지에 있을지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하나님은 우리들 각자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그 계획을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가 영화로운 존재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오늘 우리들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말없이 진행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8절 말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든데 잘 사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잘 사는 것의 반대말은 못 사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못 사는 것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못살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 속에는 힘든 일이 참 많습니다. 그 힘든 일들 때문에 우리들은 늘 ‘못 살겠다’라고 말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삽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와 까닭도 하나님이 우리와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힘든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정말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 수 있다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지금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어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고 그 이유와 목적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하고 유익한 것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는 고통도 되고, 어려움도 되고, 불행도 

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것들을 겪게 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를 잘 살게 합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쓰레기 같아서 정말 버리고 싶은 일들도 나중에 보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구원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이 힘든 세상에서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는 우리 인생에 소망을 주시기 위해 또한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이 세 가지를 깨달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러한 믿음의 삶을,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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